일과 가난 : 룻에게서 배우는 노동절 수업

 

가난은 문화의 수준에서 거짓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에서 가난의 가장 원인 하나는 일은 저주다!”라는 거짓이다. 거짓은 개인의 , 지역 사회, 그리고 국가에서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 당신은 제대로 읽었다. 국가의 경제적 빈곤이 가장 자주 일이 저주라고 하는 문화적 거짓에서 유래된 것임을 있다. 

독일의 사회 철학자 맥스 웨버(데이빗 랜디스의 고전 국가의 부와 빈곤을 참조하라) 의해 주장된 개신교 직장 윤리 영향으로 부유한 국가들이 증가한 것으로 경제 역사학자들은 자주 추적한다. 

지역에서 유명한 푸에르토 리코 살사 밴드- 그랜드 콤보가 게으름과 남성 우월 주의 문화를 촉진시킨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라는 노래를 취입했다. 노래는 나라의 빈곤을 증가시키는데 있어 푸에르토 리코에 경제적인 영향을 끼쳤다. (대중 음악이 문화와 해당 경제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는 이야기를 보려면 여기로 보라)

유럽의 종교 개혁 이전에,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는 사실상 빈곤했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에는 부유한 가족들도 있었다 : 귀족, 토지 소유자, 왕족. 그러나 대중은 종종 고용 계약을 맺은 하인, 농노, 또는 종들이었다. 종교 개혁의 영향을 받은 이들 국가들은 빈곤에서 해방되었다. 열쇠는 : 일에 대한 문화적 이해에 있어 저주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의 부분으로 바꾼 것이다.

결국, 창세기 2:2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본다 :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안식하시니라. 창세기 2:15에는 인간이 일하도록 정원으로 이끌어 진 것을 읽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이는 타락 이전이었다.

구절들은 일이란 분의 형상으로 우리가 지음 받았다고 하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본성의 반영이라는 것이며, 또한 인간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들을 보살피며 다스리는 일을 하라고 지어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문제는 창세기 3장을 목사들이 가르치기 시작하고 크리스천들이 읽기 시작하는 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창세기 3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창세기 3장에서 시작하면 인간의 반역이 일의 결과를 가져 왔음을 있다. 이제 여성의 일로서 출산이라는 여성의 노동은 어렵게 되었고, 남성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한다; 정원에 잡초는 자라고. 하지만 일이 저주 받은 것이 아니고, 저주 받은 원인이라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3:17).

성경은 분명하게 일이 우리의 존엄성의 일부임을 가르치고 있다. 복음이 앞으로 가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일의 존엄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도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것은 문화적인 수준에서 인간 번영을 위한 틀을 설정하는 것이라는 이러한 이해이다. 

일은 저주가 아니다그것은 우리 존엄성의 일부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래, 자연적 해악이 만연해 졌다. 지진, 총수, 가뭄, 해일과 기근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기근은 자연 재해 중에서 가장 하나로 간주되며, 역사의 모든 시대에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일부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일부는 자연에 의해 발생되고 있다.

성경은 기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세기 41장의 애굽 기근에 대해 알고 있다. 요셉은 7년의 풍년 후에 땅이 7년의 기근으로 고통 받을 것을 바로에게 경고했다. 요셉은 수확이 좋은 동안 식량을 비축하여 나쁜 해에 사용할   비상 식량을 비축할 것을 권고했다. 그렇게 저축의 원리가 세계에 소개되었다. 

룻기에는 다른 성경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배경이 되는 다른 기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일의 존엄성이다.

요시야의 죽음에 이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도덕적 경제적 쇠퇴의 기간인 사사기의 시기가 왔다. 사사기 곳에서 우리는 읽는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7:6; 21:25). 이 기간 중, 큰 기근이 이스라엘을 쳤다( 1:1).

기근이 극심해 졌을 , 엘리멜렉은 그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이웃 모압 땅으로 피신했다( 1:1-2). 그곳에서 아들들은 모압 여인들과 결혼했다. 10년의 기간 동안, 남자 모두는 그들의 아내들을 가난한 과부로 남겨 놓은 죽었다( 1:3).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자신들의 가족에게로 돌아가 남편을 찾으라고 권한다. 하지만 룻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증거 하나로서 분명히 말하면서 나오미를 떠나라는 말을 거절한다:

16.   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 1:16-17)

시어머니가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 가라고 놓아 주었을 , 룻은 숙명론과 자유, 아이를 먹는 몰렉의 모압인과 생명을 주는 여호와 하나님 사이의 선택에 직면했다. 룻은 나오미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언했으며 나오미와 그녀의 사람들에 대한 신의를 맹세했다. 룻의 인상 깊고 아름다운 도전적인 말은 여전히 우리를 가슴을 설레게 한다: “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것입니다.”

룻에게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는 자기 희생의 성품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남편쯤 된다. 분은 그들이 그에게 불성실할 조차 그들에게 성실하다. 하나님의 성실과 자기 희생의 사랑이 젊고 의로운 이방인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그녀의 믿음이 다윗의 보좌 왕실 족보에 그녀가 포함되는 결과를 낳았다 ( 1:5).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 왔을 , 사람들은 거의 나오미를 알아 보지 못했다(1:19)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아들들의 죽음으로 인한 절망과 괴로움을 표명한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즐거움이란 의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괴로움이란 의미)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 1:20-21)

 

성경은 현실적이다.  실제 삶의 상황에서 실존의 사람들을 보여 준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성경을 영적 휴식과 원칙을 구하려고 읽는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배고픔과 가난과 같은 현재의 이슈를 다루는 원칙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는가?

의로운 이방인 룻은 이와 같은 결핍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  결국, 그녀는 나오미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

그리고 신사 농부 보아스는 그녀를 도우려고 무엇을 했는가?

  대로우 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