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이 세계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쭉 살펴보았다. 여기까지는 유대-기독교 세계관의 틀에서 이교적 인본주의 혹은 이교적 정령숭배주의로 전락한 것을 다루었다.

생각은 결과를 반드시 낳기 때문에, 세계관의 전환은 불가피하게 가치의 전환을 가져오고, 이는 또다시 행동의 전환을 낳게 되고, 그래서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 글에서는, 세계관이 어떻게 가치를 변화시키는지, 특히 미덕과 악덕과 관련된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로마서 1장에서는 3개의 절이 신념(신앙)에서 가치로, 가치에서 행동으로 중심축을 이동시키고 있다. 이 세 절에서는 이와 같은 중심축을 가리킬 때, 각각 다른 구절들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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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8

“그러므로” 혹은 “이 때문에”

“이 때문에”

 “하기 때문에혹은 그리고 더욱이

위의 각각의 중심축 다음에, 3개의 절들에서 나오는 똑 같은 구절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사” (paradidōmi)라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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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혹은 “이 때문에”

“이 때문에”

  “하기 때문에혹은 그리고 더욱이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사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 두셨으니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사

 

인간은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이다 Human beings are free moral agents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우리가 받은 속성들 중에 의지라는 속성이 있다. 우리는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로서, 우리 삶의 길과 다른 사람의 삶의 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는 두 가지 대안적인 세계관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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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혹은 “이 때문에”

“이 때문에”

  “하기 때문에혹은 그리고 더욱이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사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 두셨으니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사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부끄러운 욕심에 

그 상실한 마음대로

첫 번째 경우(24), 마음의 정욕이 미덕에서 더러움(죄악)으로 옮겨졌다. 성적 순결을 추구하는 대신, 동물적 본능의 더러움을 바라게 되었다. 두 번째 경우 (26), 다른 사람을 존경스럽게 대하는 덕스러운 욕구대신에, 부패한 마음 때문에 부끄러운 욕심이란 부도덕으로 변해버렸다.    

세 번째 경우에서, 인간의 반역이 부패한 (부적절한, 분별력 없는, 무가치한) 마음을 낳았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작용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퇴화되어 버려지게 되어있는 마음이다.

마음의 정욕, 부끄러운 욕심, 부패한 마음은 외형적 세상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적절치 않은 비루한 도구들이다.

외형적 삶은 내면에서 흘러나온다

화란의 법률가이자 신학자인 유고 그로티우스 (Hugo Grotius)는 우리의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각과 선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내면을 잘 다스릴 때에만 우리의 외적 삶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만약 우리의 외적 삶이 엉망이라면, 그건 우리가 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와 건전한 이성에 뿌리내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로티우스는 말한다:

그런 사람은 한 왕국을 어떻게 다스리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한 도를 관리할 수 없다. 한 도를 관리하지 못하면 한 시를 다스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한 시를 못 다스린다면 한 마을도 다스릴 수 없다. 한 마을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한 가정도 이끌 수 없으며, 한 가정도 이끌지 못한다면, 제 자신도 다스릴 수 없다. 그의 이성이 주인이 되지 않는 한, 그의 의지와 욕구가 부하가 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을 다스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순종하지 않는 한, 이성이 그를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신념과 가치는 둘 다 내적인 것이다. 이제 필자는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부도덕한 생각에서 악한 행동으로 논점을 옮겨보겠다.

1:21절을 보면, 인간의 헛된 상상과 굳은 마음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볼 수 있다.  어리석음이 가는 길을 보라. 내면을 제대로 다스리는 자유가 가져다 줄 보상 대신에, 인간은 자기탐닉과 즉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러분은 중독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를 본 적이 있는가? 마약이나 알코올, 혹은 성, 포르노그래피, 도박 등.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들이 중독에 노예가 되어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들의 삶은 종종 황폐해진다.

내 주위에 매우 영리하고 대단한 재능을 가진 한 청년이 있었는데, 어리석은 선택들을 반복했다. 하나님과 도덕적 법칙들을 하나씩 거스리다가 결국 삶이 황폐해지고 말았다.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아 아내도 떠나가고 귀여운 자녀들과도 이별했다. 그의 삶은 황야와 다름없었다.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이젠 친구도 별로 없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가 망쳐버린 삶에 대해 탄식했다. 이제 남은 것은 타락한 죄인을 향해 팔을 벌리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생각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한 사람이 진리를 거짓으로 바꿔버리면, 내적인 도덕적 나침반이 진리의 좌표로부터 벗어나버린다. 그의 가치는 내적으로 먼저 틀어져버리고, 그 다음은 외적 행동이 나오게 된다. 여기에 대한 바울의 서술에 대해서는 다음 게시물에서 다루고자 한다.